타수 500인데 WPM은 45 — 타자 속도 단위가 세 개인 이유
학교나 학원에서 재본 타자 속도가 "500타"였던 기억이 있을 겁니다. 그런데 요즘 타자 사이트에서 같은 속도로 쳐보면 227 같은 숫자가 뜹니다. 영문권에서 쓰는 방식으로 환산하면 45가 됩니다.
실력이 3분의 1로 준 게 아닙니다. 세 숫자는 전부 같은 속도인데 세는 단위가 다를 뿐입니다. 그리고 그 차이를 만드는 건 한글이라는 글자의 구조입니다.

같은 속도를 재는 세 가지 단위
타자 속도에는 흔히 쓰이는 단위가 세 개 있습니다. 이름이 비슷해서 섞이기 쉽습니다.
- 타수(타/분) — 1분 동안 자판을 누른 횟수. 국내 타자 검정과 타자 연습 프로그램이 쓰는 단위입니다
- CPM(자/분) — 1분 동안 완성된 글자 수. "가"도 한 자, "값"도 한 자로 셉니다
- WPM(단어/분) — 1분 동안 친 단어 수. 영문 타자 검정에서 굳어진 관습으로, 공백을 포함한 다섯 글자를 한 단어로 봅니다
영문에서는 이 셋이 크게 어긋나지 않습니다. 알파벳은 자판 한 번에 한 글자가 나오니 타수와 CPM이 같은 값이고, WPM은 거기서 5로 나누면 됩니다. 그래서 영문권에서는 WPM 하나만 쓰면 충분했습니다.
한글은 다릅니다. 여기서 어긋나기 시작합니다.

한글은 한 글자에 자판을 몇 번 누르나
두벌식 자판에는 자음과 모음이 26개 키에 나뉘어 있습니다. 한 글자를 완성하려면 초성·중성을 반드시 누르고, 받침이 있으면 종성까지 눌러야 합니다. 글자 하나가 자판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.
| 글자 구조 | 예 | 타수 |
|---|---|---|
| 자음 + 모음 | 가 · 너 · 시 | 2타 |
| 받침 있음 | 강 · 넌 · 신 | 3타 |
| 복합 모음 | 와 · 왜 · 의 | 3타 |
| 복합 모음 + 받침 | 관 · 왼 · 월 | 4타 |
| 겹받침 | 값 · 읽 · 넓 | 4타 |
| 복합 모음 + 겹받침 | 괆 | 5타 |
"와"가 3타인 이유는 ㅘ라는 키가 따로 없기 때문입니다. ㅗ를 누르고 ㅏ를 눌러야 ㅘ가 만들어집니다. "값"의 ㅄ도 마찬가지로 ㅂ과 ㅅ을 차례로 누릅니다. 반면 ㄲ 같은 쌍자음은 시프트를 누른 채 ㄱ을 치는 것이라 1타로 셉니다.
가장 짧은 "가"가 2타, 가장 긴 "괆"이 5타입니다. 같은 한 글자인데 자판을 누르는 횟수는 두 배 넘게 차이 납니다.
사전상 평균은 3.69타, 실제 문장은 2.53타
한글로 표현할 수 있는 음절은 모두 11,172자입니다. 이걸 전부 세어보면 이렇게 나뉩니다.
| 타수 | 글자 수 | 비율 |
|---|---|---|
| 2타 | 266자 | 2.4% |
| 3타 | 4,389자 | 39.3% |
| 4타 | 5,054자 | 45.2% |
| 5타 | 1,463자 | 13.1% |
글자 수만 놓고 평균을 내면 3.690타입니다. 그런데 이 값을 그대로 쓰면 안 됩니다. 표에서 가장 많은 4타·5타 글자들은 "괆" "쒔" 같은 것들이라 실제로 글을 쓸 때는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.
그래서 평범한 한국어 문장 여덟 개를 골라 다시 세어봤습니다. "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", "값을 치르고 흙을 밟으며 넓은 들판을 걸었다" 같은 문장들입니다. 한글 139음절 · 352타가 나왔고, 평균은 2.532타였습니다.
사전상 평균보다 낮은 이유는 분명합니다. 자주 쓰는 글자일수록 구조가 단순합니다. 조사 "이·가·를·에"는 전부 2~3타이고, 받침 없는 글자가 문장 안에서는 훨씬 자주 등장합니다. 흔한 글자가 짧다는 것 자체가 한글의 특징입니다.

그래서 500타는 WPM 45다
여기서 한 가지를 더 넣어야 계산이 맞습니다. 공백입니다. 띄어쓰기도 스페이스바를 한 번 누르는 것이니 타수에 들어가고, CPM에서도 한 글자로 셉니다. 앞의 여덟 문장에는 공백이 38번 있었습니다.
공백까지 넣으면 글자 177개 · 타건 390번, 즉 한 글자에 2.203타가 됩니다. 음절만 볼 때의 2.532보다 낮아지는데, 공백은 1타에 1글자라 비율을 끌어내리기 때문입니다. 단위를 바꿀 때 쓸 값은 이 2.203입니다.
타수를 2.203으로 나누면 CPM이 되고, 거기서 다시 5로 나누면 WPM입니다.
| 타수(타/분) | CPM(자/분) | WPM |
|---|---|---|
| 300타 | 136자 | 27 |
| 400타 | 182자 | 36 |
| 500타 | 227자 | 45 |
| 600타 | 272자 | 54 |
500타가 227과 45로 보이는 이유가 이겁니다. 숫자가 작아 보인다고 실력이 낮은 게 아니라, 자를 바꿔 잰 것뿐입니다.
여기서 한 가지 짚을 게 있습니다. 한글 기록을 WPM으로 바꿔 영문 기록과 비교하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. WPM의 "5글자 1단어"는 영어 단어의 평균 길이에서 나온 관습이라, 한국어 어절에는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.
실제로 재보면 이렇습니다.
- "안녕하세요" — 5글자 12타 · "Hello" — 5글자 5타
- "감사합니다" — 5글자 12타 · "Thank you" — 9글자 9타
- "오늘 날씨가 좋습니다" — 11글자 24타 · "The weather is nice today" — 25글자 25타
마지막 줄이 흥미롭습니다. 같은 뜻을 전하는 데 드는 타수는 24와 25로 거의 같은데, 글자 수로 세면 한글은 11자, 영문은 25자입니다. 한글은 자판을 누르는 횟수는 비슷하면서 글자 수는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셈입니다. 그러니 글자 수 기반의 CPM이나 WPM으로 두 언어를 나란히 놓으면 한글이 손해를 봅니다. 비교하려면 타수끼리 비교해야 합니다.
영문 타자에서 흔히 말하는 "50 WPM"을 타수로 바꾸면 250타입니다. 영문은 자판 한 번에 한 글자라 타수와 글자 수가 같으니, 그냥 5를 곱하면 됩니다. 한글 500타로 치는 사람이 영문으로 250타를 친다면 두 언어 실력이 비슷한 겁니다. 숫자만 보고 "한글은 500인데 영문은 50밖에 안 나온다"고 실망할 일이 아닙니다. 애초에 500과 50은 서로 다른 자로 잰 값입니다.
그래서 어느 숫자를 봐야 하나
용도에 따라 다릅니다.
- 예전 기록과 비교하려면 타수 — 학교·학원에서 재던 값이 이 단위입니다. 자격 시험도 타수를 씁니다
- 문서 작업량을 가늠하려면 CPM — "1분에 몇 자를 옮길 수 있나"는 글자 수가 곧 답입니다
- 영문 실력을 볼 때만 WPM — 영문 모드로 쳐서 나온 값만 유효합니다
연습할 때 붙잡을 숫자를 하나만 고르라면 속도가 아니라 정확도를 권합니다. 오타 하나를 지우고 다시 치는 데 드는 시간이 그 글자를 처음부터 천천히 치는 시간보다 깁니다. 정확도가 95%를 넘긴 다음에 속도를 올리는 편이 결국 빠릅니다.
또 하나, 손가락 위치를 고쳐야 속도가 오릅니다. 같은 자리에서 반복해서 틀린다면 그건 속도 문제가 아니라 그 키를 담당하는 손가락이 잘못 배정된 것입니다. 어떤 키에서 자주 틀리는지 기록해두면 연습할 곳이 분명해집니다.
참고로 휴대폰 자판은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. 천지인이나 나랏글처럼 키가 적은 방식은 한 글자를 만드는 데 컴퓨터 자판보다 더 많이 눌러야 하고, 같은 키를 연달아 눌러 글자를 바꾸기도 합니다. 그래서 휴대폰 타수와 컴퓨터 타수는 같은 자로 잰 값이 아닙니다. 기록을 비교하려면 같은 자판, 같은 방식으로 잰 것끼리만 놓아야 합니다.
한글 모드로 1분만 쳐보면 타수가 바로 나오고, 결과 화면에서 타수·CPM·WPM 세 값을 한 줄로 비교해 드립니다.
글자별 타수는 꿀도구 타자 연습기가 가상 키보드 안내에 쓰는 자모 분해 함수를 그대로 사용해 계산했습니다. 두벌식 표준 자판(KS X 5002) 기준이며, 복합 모음과 겹받침은 2타, 쌍자음은 시프트 조합이므로 1타로 셈했습니다. 11,172자는 유니코드 한글 음절 영역(가~힣) 전체입니다. 2.532타/음절은 평서문 8개 표본(139음절, 공백 제외)에서 나온 값이고, 환산에 쓴 2.203타/글자는 같은 표본에 공백을 포함해(177글자·390타) 계산한 값입니다. 글의 성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서, 받침이 많거나 전문 용어가 잦은 글은 이보다 높고 띄어쓰기가 잦은 구어체는 낮게 나옵니다. 타수·CPM·WPM 환산값은 이 표본 평균을 적용한 것이므로 대략의 기준으로만 봐주세요.